1. 홀로서기

많은 한국 지원자들은 가까운 뉴욕 외곽이나 뉴저지 쪽의 캠프장으로 발령받아서, 한 캠프장에 한국인 스태프만 스무명 가까이 있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캠프장은 미시간 주의 정글과도 같은 곳에 있었다. 그 곳으로 가려면 나 혼자 국내기를 타고 근처의 공항에 내려 현지 스태프의 집에서 묵은 후 그 스태프와 함께 차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당황했다.

'지명도 못외우겠는데 혼자서 어떻게 가지?ㅠ'

라구아디아 공항으로 이동해서 나는 국내기를 기다렸다. La guardia 라는 뜻은 잘 경비(guard) 한다라는 뜻인것 같은데..하고 생각할 무렵, 그 곳에는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났던  Irene이 있었다. 콜롬비아에서 온 irene은 무척 쾌활해서 기다리는동안 즐겁게 얘기했다. 남미 사람들은 아직도 정이 많은 것 같다. 그녀는 자국의 쿠키와 캔디, 직접 만든 팔찌를 나눠주며 헤어짐을 아쉬워하였다.  마지막엔 그녀가 인사를 하려는데, 나는 허그를 하려는줄 알았지만 그녀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왔다.

'뭐..뭐지? 콜롬비아식 인사인가?'

하며 당황한 나머지 난 토끼눈이 되었는데 그녀는 내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영화에서 무척 많이 봤던 cheek kiss를 했다. 그녀는 "네가 무서워(?)해서 그때서야 네가 이런 인사가 처음인줄 깨달았어^^;" 라고 어색하게 말했다. 역시 그냥 봤던거랑 직접 하는 거랑은 천지차였다.


2. 미시간에 도착하다

원래는 저녁 8시에 출발하여 10시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국내기는 기류에 상당히 흔들리고, 도착시간보다 무려 4시간이나 딜레이되어 공중에서 진땀을 흘려야 했다. 녹초가 되어 Traverse city 의 Cherry capital airport에 내리니까 머리가 진짜 금발이고 파란 눈의 거구 남자애가 죽상을 하고 쭈그리고 있었다. 그럴만도 하다. 새벽 1시였으니까.

"아니 저....혹시...브라이언 되시나요?"
"아, 네가 Annika??"
"네..."
"내 차에 타. 울집으로 가자. 오늘은 내 방에서 자. 방 치워놨어."
"뭐뭣...? ..그럼 넌.... 어디서 주무세요?"
"나? 쇼파에서 자면 돼. (휴..) 난 ohio 대학 다니고 너보다 한살 적어. 하지만 말 놓자!"
"(-ㅁ-뭐야? 이 후배놈이)...아이 아무렴요...침대도 제공해 주시는데"

그의 집은 한적하고 모두 똑같이 생긴 주택들 중 하나였다. 자취생(?)이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금발 엄마와 금발 아빠가 함께 살고 있었고 나는 무척 안심하며 그의 방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처음엔 날 환영하려고 붙여놓은 벽보인줄 알았지만 자기 이름이 있었다. 굿모닝 브라이언이라고..스스로...


3. JUST GOGO

그의 엄마에게 한국식 부채를 선물로 드리며 방값을 대신했고 난 그와 스킬렛(skillet) 이라는 전형적인 미국 음식을 아침으로 먹었다. 계란 스크럼블, 감자, 양파, 피망, 치즈가 믹스된 음식이었는데 꽤 입맛에 맛았다.
"너 스킬렛이라는 거 정말 몰라?"
"첨들어봤는데?"
"계란 스크럼...아니, 계란은 먹을 줄 알지?"
"(이게 내가 바본줄 아나!) ..그럼. 당연하지~.-_-#"

그는 아침을 잘 먹지 않아서 팬케익을 깨작거렸지만 편의점에 들려 이것저것 사게 해주는 등 배려를 해주었다. 그의
차 뒷자리는 옷과 운동화 등으로 엉망진창이었는데 이후 많은 미국애들의 차 뒷자리는 이러했다.
이런 엉망인 차로 미국의 뻥뚫린 도로를 달리니까 미국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물론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만 빼고.



그는 작곡을 공부하고 있고, 뮤지컬 음악에 관심이 있다며 계속 뮤지컬 음악을 틀었다. 난 뮤지컬은 잘 몰랐기에 졸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사촌이 대구에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다며 말했지만 난 쉬지도 않고 말하는 미국식 영어에 어떻게 대꾸해야 할 지 몰라 답답했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이 캠프 참가자였는데, 자기와 같은 좋은 경험을 지금 캠프아이들에게 남겨주기 위해 봉사하러 간다고 말했다.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무척 어른스러웠다. 이제 곧 다른 스태프들도 만날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땅은 너무 넓었다. 그는 죽어라 엑셀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