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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카의 주택가에 탐닉하다
    디자이너의 여행/오사카 design 2010. 3. 2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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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 아침의
    오사카 역은 마치 강남역처럼
    출근하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주택가는 그렇지 않다.
    아직 문도 채 열지않은 아케이드 가게의 침묵과
    간간히 지나다니는 낯선 자동차의 굉음,
    그리고 까마귀 울음소리만이 절 내를 울릴 뿐이다.
    여행의 후반부에 묵은 이루그란데 (IL GRANDE) 숙소는 미나미 모리마치 역 주변이어서,
    번잡한 도심의 느낌이 아닌 주택가 느낌의 오사카를
    만나볼 수 있었다. 



    06 .
     Osaka
    街に耽る。



















    원래 가려했던 R&B 숙소 문제가 꼬여서, 짐을 끌고 아침 9시에 이리저리 주택가를 돌다가
    호리카와 에비스 라는 아이돌 이름같은 조그만 신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인즉 나는 고양이를 따라간 것이었다.
    신사인지 절인지도 헷갈리는데 물어볼 사람 하나 없어 물끄러미 보다가
    통에 담긴 종이 하나를 집었다. 오미쿠지였다.

    대흉이면 어쩌지? 했는데, 다행이 중길中吉. (휴-)












    춥고 뻘쭘하여 어디라도 들어가고 싶어 눈을 부라렸다.
    아침 9시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한 카페가 있었다. 
    웨이트리스는 손을 달달 떨며 커피잔을 갖다주시는 매우 나이 지긋한 할머니.
    보아하니 동네사람들만 오는 모양이라 다들 아는사이 같았다. 안 그러면 손님이 오는 족족 할머니가 서빙은 하지 않고 손님 옆에 털썩 앉아 그리 오래 떠들 수가 없다. 브랜드 커피라고 써있는걸 시켰더니 고풍스런 파란줄의 커피잔에 다방커피를 주셨다. 목재로 되어있는 모든 인테리어들이 모두 고풍스럽고 어른들 취향인데 의자 쿠션이 강렬한 호피무늬였다. 미묘하게 어울린달까... 
    달달한 커피를 홀짝이며 이런 이른 아침에 이 가게로 모이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퇴직한듯한 중년 아저씨들, 잠을 덜 깬듯한 젊은 커플, 삼삼오오 떠드는 아줌마들..마치 주말의 낮 2시정도 같았다. 이 곳만 시간이 멈춘듯 하여 하울의 움직이는 카페가 아닐까 잠시 헷갈렸다. 아마 뒤돌아보면 이미 사라졌을수도 있다.












    나는 이 환상의 공간을 뛰쳐나와 발음도 어려운 이루그란데 호텔에 짐을 풀고 또다시 호텔 주변을 돌아다녔다. 배가 고파져서, 맛있을까 왠지 의심이 들지만 사람들로 북적거리기에 선택한 카레집으로 들어갔다. 


































    아까의 할머니가 아닌가? 싶은 웨이트리스 할머니가 또 손을 달달 떨면서 나한테 물을 가져다줬다. 컵을 내려다봤더니 설마설마, 아까 그 고풍스런 파란 줄의 커피잔이었다. (아침에 그걸 그림으로 남긴지라 기억이 생생했던 것이다) ....가끔 뭔가에 씌인듯한, 약간 머릿속이 뿌연 날이 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잘 믿지 않는지라 이 동네 사람들이 컵을 공동구매 했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쳤다. 나는 기본 카레를 시키며 역시나 동네사람들로 가득한, 그래서 내가 무척 튀는 주변을 바라봤다. 어느 테이블의 사람이건 밥풀을 튀기며 가게가 떠나가라 주인장과 떠들고 있었고 접시에 얼굴을 쳐박고 있는 건 이방인인 나 뿐이었다. 그네들끼리 아는 얘기만 해서 껴들진 못하고 열심히 카레만 먹었다. 카레는 알싸하니 맛있었는데...





















    또다시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보니
    텐마텐진 한죠테이 절 앞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의 번호표는 500을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떤사람이 내게 다가와 표가 있는데 사겠냐고 소근댔다. 척 보니까 암표상이었다. 아줌마들 사이에 껴서 "지금 저게 뭐하는거예요? "라고 물었다. "라쿠고예요~" "...그게 뭐예요?" "엥? 라쿠고가 라쿠고지, 이봐 이 사람이 라쿠고가 뭐녜~꺄르륵! 도쿄서 왔남? 어떻게 설명하지?" "-_- 전 한국에서 온 여행객인데요;; 혹시 오, 오와라이인가요? ..아님 만담?" 아줌마들은 매우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학급 반장같이 생긴 아줌마가 나서서 내게 "한 사람이 에도 시대의 옛적 이야기를 빗대서 웃긴 얘기를 하는걸 라쿠고라 해요. 여기는 그 극장이고요 홍홍"  왜 개그콘서트 극장같은 게 절 옆에 있을까 궁금했지만 나머지 질문은 구글에 맡기고 나는 엄청난 기다림 끝에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바라봤다. 젊은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들어갈까 했지만 스탠딩 블랙유머(?)같은거라면 알아듣기 무리일 듯 하여 절을 구경하기로 했다.



















    이 절은 무척 큰 절로, 한 남녀 한쌍이 결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소복같이 하얀 기모노를 입고 있어 그게 결혼 의상인 줄 짐작해 보았다. 나는 마치 그들의 친척인양 사람들 무리에 섞여 그들을 사진찍고 축복의 박수도 쳐 주다가 끝이 안나기에 슬그머니 빠져나와 절을 휘 돌았다. 










    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절의 그윽한 분위기가 좋다. 절을 나오니 아니나다를까 절 뒤쪽에 일본식 인공 정원이 있었다. 멀리서 똥물인줄 알았던 약간의 고인물도 다시 보니 맑아서 물고기들이 보였다. 아무도 없는 햇살 가득한 정원이, 비현실적으로 보여서 "역시 오늘은 뭔가에 홀린듯한 날이야.." 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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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사카 역 주변같이 사람도 많고 볼거리, 살거리가 가득해서 정신없는 곳 보다
    주택가를 다니면서 이 곳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는게 더 재미있다. 
    생각할 수 있는 짬이 있어 좋고,
    뜻하지 않은 사건, 의도치 않은 만남, 생각지도 못한 대화
    이뤄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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