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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수반 아이들을 보았다
    그 여자가 사는 법/먹고사는이야기 2009. 6. 12.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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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새된 날라리도 없고 그렇다고 천재도 없었다. 평화롭고 소박한 학교여서, 하루에 두 교시 정도 특수반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학교에 전화 걸 학부모가 없었다. 나는 소위 '특수반'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주로 지적 능력이 4-5세에서 멈췄지만 몸은 17-18인, 남들과 조금 다른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늘 궁금했다.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감정은 없었다. 그저 호기심반, 두려움반이 섞인 눈으로 그들을 관찰했다.

    지금 기억나는 한 남학생은 글은 커녕 말도 잘 못했지만 "음료수 하나만 사다줘~"라는 말은 분명하게 하는 아이였다. 선생님이 계시건 말건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 모델 포즈를 취했다. 나는 그에게서 '관심받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발견했다. 그는 남자애들이 지나가면 멍하게 있다가 여자애들이 지나가면 독특한 포즈를 취했는데 눈빛도 참 요상했다. 여자애들은 그를 꺼렸지만 동시에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그에게 악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여자가 좋았을뿐...

    또 한 아이는 덧셈까지 할 줄 알았던 특수반 엘리트로, 말도 잘하고 트로트도 곧잘 불렀다. 덩치가 커서 남자애들은 그 애를 샌드백으로 삼아 때리기도 했다. 반장이었던 나는 남자애들이 때릴때마다 막았지만 그 애는 정작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날도 그 애가 남자애들한테 조금 맞고 교실을 나와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난 그애를 따라가서 교실로 데려오려고 했는데 그 애는 계단 중간에 서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애들은 말도 못하고 셈도 잘 못하지만 감정이 살아있었다. 단지 표현을 못할 뿐이었다.

    졸업을 하고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난 지하철에서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일렬종대로 뭉쳐 다니고 있었다. 어리버리하고, 여전히 말도 잘 못하는 거 같았지만, 늙지도 않고 즐거워보였다. 그들의 세상은 무척 단순하고, 죽을때까지 그 나이 그대로 순수할 것이다. 일반 사람 눈엔 불행해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세계에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장애에 대해 의식할 정도의 지적능력을 갖췄다면 어떨까. 최근 남친이 발목을  수술해서 목발을 집고 다니는데, 같이 다니다 보니 역지사지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이 내 목발을 한번 보고, 그 다음 다친 발을 한번 보고, 마지막으로 내 행색을 봐. 이 사람이 진짜 장애인인지, 아니면 그냥 수술한건지를 보는거야. 장애인들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아.."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듯 했다. 나는 같이 다니는 것 뿐인데, 사람들의 시선을 그렇게 따가울 수 없었다. 그냥 호기심이든, 동정이든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나는 내가 특수반 아이들을 보던 시선을 떠올리며 반성하게 되었다. 단순한 호기심이라도, 그들에겐 상처가 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장애인이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되기 전까지는 모두 무관심하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내가 볼 땐 아직도 멀었다. 영국의 방송만 해도, 모든 방송을 청각장애들을 위해 화면 귀퉁이에서 수화를 해 주는데, 어찌나 감정표현까지 리얼하게 하던지 그것만 봐도 대강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모든 엘레베이터나 신호등에선 음성으로 알려주고, 네덜란드 공항에서는 휠체어 타는 사람들을 위해 세세한 경사로를 다 만들어 놨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들이 지하철이날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배를 땅에 대고 기어가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내가 장애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없지만 같은 나라의 시민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이런 사회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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