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Ursula Meier, 2008)




엘레베이터에서 교수님을 만났다. 깜짝놀랐다. 여성감독님들, 대학원생 선배들,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모두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같은 엘레베이터에 타고 있었다. 영화 소개를 읽으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는 착석했다. 팜플렛에 있는 영화 설명은 모호했기 때문에, 영화내용을 지례 짐작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1시간 반 후, 영화 크레딧이 오르고 나는 메스꺼움을 느꼈다. 빨리 영화관을 나가서 맑은 공기를 맡고 싶었다. 떠밀듯 밖으로 뛰쳐나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매연를 탄 산소 마끼아또였다. '이런, 그건 '영화에서만 나올법한 이야기'가 아니구나. 내가 눈감고 있었던 '현실'이구나.' 기억에서 지워버리기는 쉬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걸으면서, 찬찬히 내용을 다시 곱씹기 시작했다.


5명의 가족들



첫 장면은 시끌벅적하게 하키놀이를 하는 5명의 가족이다. 부부와 두명의 딸, 그리고 막내 아들이 개통되지 않은 도로와 들판 가운데에서 집을 짓고 살고 있다. 평화로운 삶, 자연과 공존하는 삶이 무척 생경하게 느껴졌다. 오직 한 사람, 스레시메탈과 줄담배를 즐기고, 노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첫째딸만이 '요즘사람' 같아서 낮설지 않았다. 곧이어 바리케이트가 쳐지고 10년만에 도로가 개통되자, 이 집은 소음과 매연으로 둘러쌓인다. 이 집이 오염으로 잠식되어 가는 과정이 마치 산업화의 진행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 했다. 그 속에서 천진난만하게 아스팔트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위태로워 보였고 숨막혀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나까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나의 어린시절이었고, 앞으로의 내 모습이었다. 첫째딸은 비키니를 입은채로 남자와 달아나고, 남은 가족들은 방음장치를 하며 집안으로 숨는다. 엉망진창이 된 어두운 집안은 밝고 단란하던 처음의 집과 무척 대조적이다. 유일한 환기구멍을 막으며 아버지는 가족 동반 자살을 시도하지만 어머니는 막힌 문을 깨부수며 가족들의 숨통을 틔운다. 그리고 그들은 괴물같이 변한 집을 영원히 떠난다.

도로 개통 Before & After



단란하고, 창조적인 생활을 했던 이들은 도로개통 후부터 신경질적이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가끔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는 사람들의 삶이 어땠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호모루펜스'라는 책에 따르면 일하다가도 놀고, 놀다가도 일했다고 한다. 새 도로를 개통했지만 교통체증이 다시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도 가슴 한켠이 답답해왔다. 인간의 삶을 더 편하게 해주고, 시간을 단축하게 해주는 차, 도로, 아파트 등이 진정한 발전이나 개선, 진보를 뜻하는걸까? 대답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생각하며 살던 내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관계와 일상이 삭막해져 가는데 나는 내 삶에 대해 방관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들판으로 소풍나가는 이 가족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도로위의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연속으로 소풍을 가는것과 도로위에서 한없이 기다리는 것 중에 어떤것이 더 행복을 줄 것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듯 했다. 또한 이들의 무관심이 다른 누군가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방관도 죄라는 것을 깨달았다. 보이지않는 뭔가에 의해 한 가족이 무력하게 파괴되는 것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 가족의 아들이 아스팔트와 페인트를 천진난만하게 얼굴에 바르자 객석에서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영화는 냉정하게도 '끔찍하지? 하지만 이게 현실이야!" 하고 말하는 듯 했다. 이 아들은 인간의 아들일수도 있고, 물고기나 사슴의 새끼일수도 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은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라, 타르와 같은 오염물질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다음 세대까지 걱정할 수 없을지 모른다. 현 세대인 극중 부부도 미쳐가기 시작하니까.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다. 우선 내 삶과 주변환경에 방관하지 않기로 했다. 꾹꾹 눌러 참을게 아니라, 문제점이 뭔지 차근히 살피기로 했다. '성장, 진보, 개발'이 우선시되는 사회 풍조가 첫번째 문제다. 이 사상은 인간 뿐 아니라 전체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들의 터전을 앗아가는 어리석음을 멈추기 위해서는, 나부터 생각을 바꿔야겠다는 오기가 들었다. 그리고 조금씩 행동해가기로 했다. 블로그를 열어 환경에 관한 의견을 알리고, 옥상에 식물을 가꾸기 시작했다.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책을 보면서 생활에서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지 배우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지금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벽을 뚫는 어머니와 같은 심정이다. 벽이 헐릴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에서 절박하게 벽을 두드리고 있다. 다행히, 힘이 센 아버지가 아니라 가냘픈 어머니가 이 벽을 뚫었다는 것은 내게 한가닥 희망을 준다. 지금까지 힘, 효율성, 이성 등으로 대표되는 남성적인 방법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면, 이제는 여성적인 에너지로 이 문제를 타개해야 한다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집을 부수지 않았지만 그들은 철거민과 다름없다. 무력하게 짓밟힌 그들의 생활을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지구가 인간의 집(Home)이고 더이상 집에서 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인간은 대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이제 인간만 잘 사는 삶이 아니라 전 생태계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조화로운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꼈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곳곳에서 들려오는 경고를 나는 더이상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