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으로 시작해서  SNS으로 끝나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페이스북을 연다. 페북에는 다년간 다녀온 내 회사사람들과 그간의 지인들이 엮여있다. 다들 이것저것 퍼나르기 바쁘다. 본인의 생각은 짧막하거나 없고, 대신 링크된 뉴스가 그의 사상을 대신한다. 물론, 정치적인 문제나 연예인 가십, 업계 뉴스가 대부분이다. 


내가 가입한 지역 맘들 카페는 좀 더 개인적인 고민이나, 판매, 그것도 아니면 오늘의 드라마, 연예인의 소식들로 빠르게 채워진다. 인스타그램을 볼까? 인스타그램은 전세계의 온갖 정제된 사진들뿐이라 아름답지만 조금 마음이 불편하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이제 '진짜 나의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아침부터 많은 정보로 머리속이 가득하다. 그래서 머리를 비우기 위해 츨근시간에는 유투브를 본다. 연예인들의 냉장고를 뒤져 요리하는 거라든지, 어제 누군가의 말실수로 이슈가 되었던 그런 장면, 혹은 이번 시즌에 재미있다고 소문난 드라마. 볼 것은 넘쳐흐른다. 퇴근시간에도 마저 본다. 그리고 자리에 누워, TV를 틀어놓고 카톡을 좀 확인하거나, 페북을 틀어 새소식 버튼을 터치터치터치...


나의 하루는, 내가 아니라 셀러브리티의 삶으로 가득하다. 누가 뭘 어떻게 왜 어디서에 관한 사소한 것들마저 나는 다 알고있다. 정작 모르는건 '나에 대한 것'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혹은 하고 싶은지에 대한 것도 왠지 셀러브리티가 결정하는 느낌이다. 화장품은 그 누군가의 립스틱으로, 맛집은 누가 맛있다고 했던 그 집에서, 운동은 그 누군가가 살을 뺐다던 그 새로운 운동법으로 등등. 그래서 정작 내가 사는 이 현실은 비현실적이다.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하고 지리한 삶을 살게 된 것일까.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셀러브리티로 태어날 껄 그랬어. 



누가 내 삶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 없게 만드는가


어제는 스티브 유의 찡그린 사진이 메인에 떴다. 클릭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제목과 함께. 어차피 댓글은 보지 않아도 뻔할 만큼 증오로 가득할테지만, 댓글까지 확인한다. 스티브 유와 얘기한번 해본적 없지만, 내 마음속에 증오 +1 이 늘었다. 연관 기사에 또 하나의 자극적인 기사 발견! 클라라가 중국 드라마 주인공을 꿰찼어? 내 마음속에 시샘 +1 늘었다. 이러기를 두 시간째. 과연 자극적으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잘못일까?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밥벌이를 충실히 하고 있을 뿐인거다. 그렇다면 낚이는 나 자신을 자책하면 끝나는 일일까? 나는 이것이 전체적인, 사회적인 구조와 분위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버거운 하루의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핸드폰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많은 이들에게 하루의 시작과 끝에 '진지한 고민'을 더하면 아주 죽을 것만 같다. '생각할 수 있는 여유'는 없다. '책 읽을 시간'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 자극적인 것을 탐닉한다. 그걸로 스트레스가 풀리냐면,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의 근원을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악순환이다. 


생각과 독서를 할 수 없는 한국의 대다수의 시민은, 말초신경이 잘 작동한다. 마치 당에 중독되면, 당에만 빠르게 반응하는 것처럼. 혹시 3일 전 본 재미있는 기사를 기억하는지? 우리는 하루하루 뉴스를 소비하며 흘려보낸다. 그런 뉴스들을 '더러운 강'에 빗대자면 이런 찌라시 뉴스의 강물은 우리를 심각하게 '오염'시킨다. 같이 더러워지면 내가 무엇때문에 더러워졌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놓인다. 구체적으로는, 본인의 삶이 심각한 불만족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자기 혐오로 이어지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로 이어진다. 악플러, 누군가를 닮기 위한 성형, 삶의 속도를 더 빠르게 해주려는 아이들의 부모들, 모두 같은 오염의 결과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면  


스트레스의 근원을 찾아보자. 삶의 속도라는게 있다. 한국은 체감상 상당히 빠르다. 혹자는 빠르기 때문에 경제가 발전한거 아니냐는 소리를 하겠다만, 경제가 발전해서 누군가는 집이 여러 채 있는데 대다수는 집도 못사허덕이고 있는 이상한 상황에 놓였다. 헛발전한거다. 탄탄한 철학 없이 버블마냥 덩치만 불리는 것은 언젠가 급격히 꺼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빠른건 좋지 않다. 생각하고, 책을 읽고, 누군가와 커피 한 잔 천천히 마시면서 추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토론을 할 여유가 있는 삶이 건강한거다. 생각없이 정신없이 사는 것은 '기계의 삶'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거고. 그래서 정신없이 사는 것을 개인 스스로라도 멈출 필요가 있다. 회사를 당장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떠나라는 것이 아니다. 작게는, 잠깐 핸드폰을 두고 두 시간쯤(왠지 길게 느껴지지 않는가? 중독된거다) 멍하니 있어보거나, 여행을 떠난다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보는 것이다. 그 도시의 모든것을 다 알고 섭렵해보려는 그런 속도감을 버리고 말이다. 하루정도는 휴가를 내서 나라는 인간은 뭘 하고싶은걸까? 리스트를 적어보는거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게 뭔지 모르게 되는 카오스에 빠지게 된다. 상당히 당황스럽다. 왜냐하면 평생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거든! 몇 일을 휴가내 보아도 마찬가지다. 도저히, 내가 좋아하는게 뭔지 모르겠어. 


그런데 이게 시작점이다. 우리 나라의 교육은 그런걸 생각하라고 만들어지지 않았다. 허접하게 쓰인 국사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빈칸을 채우면 좋은 점수를 주게끔 만들어진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늦은 20대, 30대에, 당장 밥벌이를 준비하거나 하고 있을 나이에 시작해야 한다. 비극이지만, 할 수 없다. 반복적으로 타인의 삶을 뇌속에 구겨넣고, 내 삶에 자괴감을 느끼기보다, 차라리 나에 대한 고민으로 괴로워하는게 낫다. 



끝으로


몇 일을 고민하면 '나에 대한 고민'이 끝날까? 

대략 80년 쯤이면 되겠다. 죽을때까지 멈추면 안되는 것 중 하나다. 


운 좋게 본인이 좋아하고도 잘하는 것을 찾아서 죽을때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지극히 드물고, 그런 이들조차 본인에 대한 실험과 고민을 매일 반복다. 이렇게 쓰는 나 조차도 나란 존재 대체 뭔가에 대한 카오스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고민하는 중생이자 미물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고 계속 시도하고 넘어지고, 다시 실험해 보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밤잠을 줄이면서 뭔가를 만들고, 배우고, 찌라시 뉴스 볼 시간에 차라리 책을 읽으면서. 그랬더니 누군가를 의미없이 미워하고 시샘하는데 쓰인 에너지가 남더라. 그 에너지로 내 삶을 온전히 사는데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