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서 아내, 그리고 엄마로 가는 과정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아기가 백일을 막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육아는 여러 의미로 힘듭니다! 꿈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남편이랑 탱자탱자 놀던 아기없는 아내의 삶이 토네이도급으로 변해버렸으니까요. 일분 일초 자아와의 싸움이랄까요. 내 삶은 어디에 있냐!!!면서 소리치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지요내 안의 혼란은 사실 가장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도 알기 힘듭니다. 이런 기분을 타인에게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서 답답하고 우울하던 때, 제 손을 붙잡고 '네가 이랬지? 그래서 힘들었구나' 하고 위로해 주는 요 영화를 보게 되었네요. 남편과 함께 보며 "그래, 맞아, 저랬지!" 하면서 격한 공감을 때리게 했던 요 프랑스 영화는 단순히 '육아영화'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해요. 제목인 '해피이벤트' 마냥 ~육아는 힘들지만 그래도 즐거운 이벤트 아니겠어?~ 하고 무한긍정의 메세지를 날리지 않아요. 오히려 굉장히 현실적이고 솔직하게 다가가지요. 


임신에서 출산, 그리고 끝? 이 아닙니다...


대다수의 커플들이 그렇듯, 영화 속 두 주인공들도 열렬하게 연애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며, "이제 슬슬 아기를 가질까?"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신을 해요. 하지만 임신 과정에서부터 여자는, 여성성을 잃는 것에 대해 절망을 하는 한편, 새로운 생명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의 감동같은 것 말이지요. 일장 일단이랄까요. 힘든 입덧과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한 조울증을 지나 드디어 출산을 하게 되는데 사실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죠. 


출산과정도 가감없이 나타나는데, 한국의 대학병원에서 낳는 과정과 매우 닮아있어서 C병원에서 출산을 한 저도 급 공감. 회음부 절개를 비롯, 레지던트들과의 회진때 샘플로 쓰이는 여자주인공의 몸은 사실 아기를 낳는 도구같은 느낌이지 인간의 몸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들게 합니다.  


모성과 부성


여자주인공은 아기를 낳자마자 모성이 생긴 듯 해요. 모유수유도 바로 시작하면서 감동을 받는 장면도 매우 아름답지만 현실은? 저는 아기를 낳자마자 모성이 생긴 타입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녀처럼 무조건 직접 수유를 고집하거나, 병원에서부터 아기를 못봐서 안달복달하지도 않았고요. 저는 초유는 먹이겠다, 모유수유는 언제까지 하겠다 등의 원칙만을 가지고 여러가지 타협안을 찾았어요. 엄마도 인간이기 때문에, 엄마가 지치면 모성이고 뭐고 아기한테 최선을 다할수가 없다는 걸 육아를 하면서 알았어요. 또한 모유수유는 자연적인 것이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수유자세를 배우고 아기와 씨름하기에 바빴지요. 하지만 모유수유는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경험인건 분명해요. 그걸 영화에서 잘 살렸구요. 


부성은 모성보다 더 늦게 형성되는 것 같기도 한데, 영화에서도 철없이 애 안고 게임하던 남자주인공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확실히 남자들도 이 극한의 환경에 맞춰 변하는것 같아요. 



육아, 그리고 부부사이


연애는 마냥 즐겁지만,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것은 많은 희생과 책임감을 가져온다는 것을, 저도 아기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어요. 영화속 부부는 아기 때문에 피곤함에 날카로워지고, 꿈을 당분간 접고 생활비를 벌기위한 직장을 택하며,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게 돼요. 한때 사랑했던 아내가 지금 뭘 느끼는지, 남편은 아기때문에 친구도 못만나고 얼마나 답답해하는지 살펴볼 여유가 없죠. 아기가 밤에 조금씩 잘 자게 되고 피곤이 잦아들면서, 그제서야 저도 조금씩 남편에게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어요. 팀워크를 장기레이스로 계속 하려면, 서로 꾸준히 노력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여자로서의 삶


이 영화는 특히 여자로서의 삶, 여자가 느끼는 감정선을 세세하게 살렸어요. 옛날 어머니들과는 달리 요즘 여성들은 자신만의 커리어와 일이 있고, 그 일을 당분간 놓는것은 결코 쉽지 않아요. 아기가 없었던 때 내가 항상 하던 일들을 계속 하고싶은데, 그게 안될때 정말 괴롭거든요. 저도 약 세 달간 제 시간이 없는것에 괴로워하다가, 잠시 제 일을 접어두고 육아에 집중하면서 시간이 지나니 여유가 좀 생기더군요. 프랑스는 좀 더 육아환경이 나을 줄 알았는데, 베이비시터나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을 불안해 하는것이나 어린이집이 꽉차서 못들어가는것도 한국의 현실과 닮았더군요. 결국 남편과 친정 식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더 이해하게 되는 점도 좋았어요. 



영화의 결말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이 결말은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출산 후 한달 쯤 되었을때 이 결말을 봤다면 "뭐야 이 무책임한 결말은!!" 하면서 화가 났을수도 있는데, 백일의 기적을 겪은 저로서는 정말 시간이 해결해 주나보다, 하고 생각하게 돼요. 이 영화는 남편과 함께 보는걸 추천해요. 남편도 내 아내가 저렇게 힘들었지 하면서 격하게 리마인드 할 수 있고, 아내도 남편이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고 나름 힘들게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고 노력하고 있구나라는걸 알 수 있으니까요. 이 영화를 보고 '아기를 낳으면 안되겠군...'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이에 대한 판단은 좀더 아기를 키워보고 내리겠습니다.ㅋㅋㅋ 영화 자체는 다큐식이 절대 아니고, 짜임새있는 드라마 & 한컷한컷 섬세한 연출, 프랑스 영화 특유의 아름다운 미장센 덕분에 꽤나 만족스러운 관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