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썸머 indian summer

늦가을의 봄날 같은 화창한 날씨;평온한 만년(晩年)




운타운의 아트갤러리 밑 광장.
인디언썸머 페스티벌이 한창이었다.
3대가 한 가족인듯한 인디언들이 나와 전통 공연을 선보였다. 
관객은 거의 다 백인들. 모두 미동도 없이 그들의 공연을 보았다.

인디언들은 무대에서 나와 관객석에서까지 공연을 하였다. 춤과 노래, 주문같은 가사들이 다운타운에 울려퍼졌다. 아이들은 조금 하기 싫은 표정이었지만, 추장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어른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의식처럼 행했다.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캐나다 사람들은 그들을 first nation이라고 한다. 이 땅에 처음 살던 사람들이란 뜻이다. 알다시피, 이곳에 이주해 온 백인들이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북미 땅을 차지했다. 인디언의 수는 이제 미미하게 남아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만 산다. 캐나다 정부에서는 인디언 후손들에게 사죄의 차원으로 많은 보조급을 지급한다 하는데, 돈을 벌지 않아도 될 만큼 보조금을 받는 인디언들이 마약을 하게 되어, 더욱 그 수가 줄고 있다 한다. 지능적인 학살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백인들의 도시 밴쿠버는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소수의 인디언 문화를 자신들 전체의 정체성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인디언 페스티벌 덕분에 도시 곳곳엔 인디언들이 숭배했던 독수리상이 설치되었다. 공항 내부과 대학 건물마다 거대한 토템폴이 보인다. 미개한 토테미즘이라 무시하고 멸했던 인디언들의 정신을 백인들이 다시 복원하느라 바쁘다. 

울컥 화가 났던 적이 있었다. 공연장 앞에서 무료 커피를 시식하며 커피 원두를 판매하고 있었다. 인디언 전통 패턴이 수놓아진 커피 봉지. 값도 싸고 맛이 무난하여 이것저것 물어보며 설명서를 읽어보았지만 어디서도 '인디언'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작게 인쇄된 유명 커피브랜드 상표를 발견했다.

"......언제 로스팅한건가요?"
"음...이건 말레이지아에서 원두를 따서 미국 공장을 거쳐 오는것이기 때문에 로스팅 날짜는 잘 모르겠는데, 2주는 안됐을 거예요."
"이게 인디언들이랑 무슨 관계인가요?"
"그 공장이 아마.... 인디언 마을에 있을걸요? 아무튼 이거 오가닉이예요."
"뭣이?"

라고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무튼 생산부터 공정까지 불확실한 정보만을 주고, '인디언 풍'이라는 이유로 이곳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식이구나. 구입할뻔했잖아!

특히, 인디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의 토템 폴과 정신을 나타낸 그림을 그렸던 Emily carr라는 백인 여성 화가를, 이들은 밴쿠버 제 1의 화가로 정했다. 이곳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아트갤러리에선 에밀리 카 전시가 한창이고, 그랜빌에 있는 에밀리 카 아트 스쿨에서는 에밀리 카의 족적-인디언 부족 마을 경험-을 하려는 학생들의 세미나로 북적인다. 이곳 주립대학,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에는 따로 Anthropology museum을 만들어 인디언 토템폴을 중점적으로 전시한다. 온통 인디언 문화 투성이다. 그런데 정작 인디언은 보기 어렵다. 게다가 UBC든 그랜빌이든 갤러리 숍에 가보면 인디언 풍을 딴 조악한 용품을 파는데 어떤 것은 태국이나 말레이지아 산이다. -_-;
제대로 된 제품을 해놔야지! 사실 대부분의 것들은 인디언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결국 인디언문화에 대한 깊은 반성이나 이해 없이, 겉핥기식으로 취급하고 있다.


에밀리 카의 세미나에 참석해 보았다. 자신들이 Witness(증인)이라고 소개하는 한 백인 학생은 자신이 에밀리 카를 무척 존경하며, 그녀의 정신을 따르고자 이 학교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자원봉사 차원으로 인디언 부족 마을에 가서 인디언 부족을 체험하며 에밀리 카의 족적을 따라가 보았다고 한다. 그녀는 에밀리 카가 그려놓은 나무와 비슷한 나무를 찾아 사진을 찍어왔다. (그게 자원봉사는 아니잖아!) 이 세미나에 초대된 추장은 무거운 추장옷을 입고 나와 이렇게나마 문화를 전파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인디언들은 평소에 평범한 옷을 입고 다니지만.) 안타까운 일이었다.

실제로 아트 갤러리에서 맞이한 에밀리 카의 그림은 매력적었다. 그녀는 성인이 된 이후 거의 인디언 부족과 살며 그들의 문화를 그림으로 남겼다. 그래서 그런지 인디언들이 자연물들을 존경하는 정신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이 그림에 드러났다. 그러나 그녀는 창작자이기보다 '기록자'였다. 인류학 박물관에서 본 진짜 토템 폴은 그녀의 그림에서 본 것 보다 훨씬 강한 뭔가가 느껴졌다. 그 강한 기운은 내게 '슬픔'으로 다가왔다. 박물관 한쪽에는 흑백 사진들을 껴 놓은 바인더가 있었는데, 전멸하기 전의 인디언 마을 사진을 볼 수 있다. 평화롭고, 예술적인 마을이었다. 토템폴에서 느껴지듯 그들은 자연을 정복한다기 보다 경외할 줄 알았다.

사라져가는 그들의 문화가 안타깝다. 자신들의 멸종시켜 놓은 문화를 자신들의 것인양 내세우는 행태또한 분노가 치민다.
그리고 이들의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은 witness, 즉 증인이라기 보다 파괴자라고 해야 옳다. 인디안이 한국 민족과도 많이 닮아 있어서인가 밴쿠버를 돌아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 라는 책에서 보듯 인디안들은 200년전 숟한 고난을 겪었는데, 현대에 와서도 이들의 후손들은 백인들 앞에서 공연하며 박물관에 박제된 토템폴처럼 살아가고 있다.

인디언들의 만년은 아직도, 평온하지 않다.